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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사찰]신화가 흐르는 함월산 부처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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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rimsaham 작성일21-03-20 10:36 조회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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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함월산(含月山) 기림사(祇林寺)는 2600년 전 부처님께서 머물러 계신 곳이다. <금강경> 첫마디에 나오는 “한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서 큰 비구 1250인과 함께 계셨다”는 ‘기수급고독원’이 바로 신라의 기림사이기 때문이다. <잡아함경> ‘급고독경’에 부처님께서는 급고독장자를 맞이하여 “모든 법은 무상하다고 생각하는 일, 보시하는 일, 계를 잘 지키는 일, 탐욕을 벗어나는 일 등은 복된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이 말씀에 감복한 장자는 코살라국 파사익왕의 아들 기타태자의 숲인 기림(祇林)에 황금을 깔아 땅을 사서 정사를 짓고자 하였다. 이에 감동한 태자가 숲을 부처님께 바치고, 장자가 집을 지으니 기타태자의 숲에 급고독장자의 정원, ‘기수급고독원’이 됐다.
‘광유성인’ 그리고 ‘사라수왕탱’
또한 조선 숙종 때 혜총ㆍ축홍스님이 편찬하여 영조 16년(1740)에 간행된 신라 함월산 기림사 사적기를 보면 “기림사는 신라 선덕왕 12년(643)에 천축국 광유성인이 창건해 ‘임정사’라 하였고 이후 원효대사가 사명을 ‘기림사’로 바꾸었다. 기림사 동편 약사전에는 ‘사라수왕탱(娑羅樹王幀)’이 봉안되어 있다”고 했다. 광유성인은 누구이고, 사라수왕탱은 무엇인가?
잠시 조선시대 15세기에 지어진 <안락국태자전〉을 살펴보자. “범마라국 임정사(林井寺)의 오백 제자를 거느린 광유성인은 꽃밭 수리를 위해 승열바라문을 서천국으로 보낸다. 승열바라문은 서천국 사라수대왕과 왕비 원앙부인과 함께 임정사로 향하는 도중에 임신한 부인이 갈 수 없게 되자 죽림국 자현장자에게 종으로 판다. 부인은 왕에게 항상 ‘왕생게’를 외울 것을 당부한다. 대왕은 아들을 낳으면 이름을 ‘안락국’이라 지으라하고 승열바라문과 함께 임정사로 향한다. 이후 원앙부인은 자현장자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안락국은 임정사에서 아버지를 만난다. 또한 안락국은 광유성인이 준 다섯 가지 꽃으로 죽은 어머니를 살려내고 죄를 지은 자현장자는 무간지옥으로 떨어졌다.”
이 국문소설을 불화로 표현한 것이 사라수왕탱이고 광유성인은 석가모니불이다. 사라수대왕은 아미타불, 원앙부인은 관세음보살, 안락국은 대세지보살, 승열바라문은 문수보살, 오백 제자는 오백 아라한, 범마라국은 바로 신라이고, 숲속의 오종수와 꽃밭이 있는 임정사는 기림사를 나타내고 있다.
다양한 수종 ‘기타태자의 숲’ 연상
성대중의 <청성잡기>에 경주의 일곱 가지 괴이한 일 중에 “기림사의 감로수의 신이함과 오색 작약은 옮겨 심으면 제 빛깔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마 기림사의 오색작약은 안락국이 어머니를 살린 신령스런 꽃으로, 사라수대왕이 임정사 꽃밭에 준 다섯 가지 물은 기림사의 감로, 화정, 장군, 명안, 오탁수가 되었으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이러한 창건연기 설화와 안락국태자전의 신앙적 맥락에서 기림사를 살펴보면 먼저 들어가는 입구부터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기타태자의 숲을 연상케 한다.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커다란 졸참나무 뿌리와 석축을 의지처로 삼은 서어나무는 참고 살아가는 사바의 모습을, 천왕문 앞 누운 소나무는 하심을, 대적광전 앞 반송은 공양물을 올리는 예경심을, 삼천불전 앞 가이즈카향나무는 향공양을, 범종루의 왕벚나무 굴피는 분소의를 입은 두타 가섭존자를 생각하게 한다. 또한 유물관 주변 쥐똥나무 생 울타리는 1250 아라한들 모습처럼 보여 그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도열한 승군인 듯 당당한 진남루
천왕문을 지나 들어서면 긴 전각이 앞을 가로 막아 부처님의 공간을 바로 보여주지 않는다. 수많은 승군들이 도열해 선 듯 길고 당당한 모습의 진남루(鎭南樓)는 남쪽 동해의 왜구를 진압하고자 한 호국불교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진남루와 응진전의 건물 사이로 들어서면 통일신라시대의 단아한 삼층석탑과 가지를 뻗은 반송이 법신(法身)의 모습으로 푸름을 토해낸다. 전각은 북쪽에 대적광전과 약사전, 동쪽에 목탑지, 서쪽에 응진전, 남쪽에 진남루가 배치되어 ‘ㅁ’자 형을 이룬다.
단청이 사라진 대적광전은 금당답게 크고 넓은 공간에 17세기 전반에 진흙으로 조성된 당당한 체구에 지권인을 한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약사불, 아마타불이 오른 손을 들어 설법인을 하고 있다. 사각형 얼굴에 큼직한 코와 반쯤 뜬 눈, 떡 벌어진 어깨 등 조선 중기 부처님의 근엄한 표정이 잘 나타나 있다. 부처님 뒤에는 1718년에 그린 비로자나불화와 아미타불화, 약사불화가 있다. 중앙의 주불을 중심으로 화면 가득히 수많은 보살과 제자, 천신들을 점차 화면의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배치하여 원근감과 입체적인 공간감을 살리고 있다.
손 맞잡고 기뻐하는 반특가 형제
약사전 내부 좌측 벽에는 스님이 부처님께 차를 공양하는 벽화가 있다. 삼월삼짇날과 9월9일 경주 삼화령 미륵부처님께 차를 바친 충담스님의 모습 같다. 정수리에서 흰빛 광명을 뿜으며 차를 받는 부처님이나 차를 바치는 충담스님, 바라보는 아난의 합장한 모습 또한 거룩하다.
기림사 응진전 오백나한들은 임정사의 광유성인이 거느린 오백제자 같다. 나한의 모습은 천태만상이다. 특히 바보 동생 주리반특가가 아라한을 성취하여 형 마하반특가와 서로 손을 잡고 기뻐하는 모습이 재미를 더해 준다. 또한 천장에는 부처님이 안락국 태자에게 준 다섯 송이 꽃이 하늘을 떠다니는 듯 신이함을 느끼게 한다.
기림사 성보박물관에는 있는 연산군 7년(1501)에 조성된 건칠 관세음보살은 원통형 보관을 쓰고 목에는 영락을 하고 있다. 오른발은 아래로 내리고 왼발은 편안하게 오른 무릎 옆에 둔 반가좌(半跏坐)로 오른손은 무릎위에, 왼손은 대좌를 짚고 있는 편안한 모습은 사라수대왕에게 항상 왕생게를 외울 것을 당부한 원앙부인 같다. 또한 자현장자가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 모습을 나타낸 지옥시왕도가 눈길을 끈다. 상단에는 염라대왕을 포함한 열 명의 지옥의 왕들이 심판을 하고, 하단에는 망자의 몸에 못을 박거나, 절구에 넣고 찧거나 혀를 빼내어 쟁기로 가는 등 옥졸들에게 죄를 받고 있는 지옥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처럼 기림사는 안락국태자전이나 기수급고독원의 이야기를 눈으로 보여줌으로써 한층 사실감을 불러일으키는 신화가 흐르는 부처님의 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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